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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진 에세이│당신

내가 오기도 전에 존재한 너

 

내가 너를 만나기 전에
넌 수십 년째 우리나라 땅끝 섬 중에서도
가장 끝자락 섬에서
늘 그 자리를 지켜왔을 거야.

너를 처음 만난 날에도
지금 너를 본 날에도
이미 십 년 넘게 지났으니깐.

혼자 여행 다니는 것을 좋아하던 나에게
어릴 적부터 너를 보았으니,
너는 분명
나보다 어른이지?

삶을 어떻게 살아야 하는지
놀 지는 이 자리에서
가끔 너에게 묻곤 했서.

4계절을 너를 보면서
나 자신을 되돌아보기도 했지.

기억나니?
오후 4시가 되기도 전에 딱 한번 있는 배가
끊기고 무조건 이 작은 섬에서
내일 아침이 와야 배를 타고 나갈 수 있다는 것과
비바람이 세게 불면 언제 나갈지 모르는 시간들과
외로움과 먹을 거에 마음 조리기도 했던 것.

태풍과 비와 강한 바람으로 한 달 넘게 섬에 갇혀서
지낸 적도 있었지?

그때마다 너에게 와서
내가 말 걸기도 했잖아?

나, 이젠 그때가 참 그리워졌서.
아무것도 모르는 어린 나의 꿈들과 일들이
지금도 같지만,
무엇보다도
너처럼
늘 변함없이 그 자리에서
무사히 나를 반겨주는 것에
내가 너무 고마워하고 있다는 것을 알지?
우리나라 수많은 섬들 중에서
가장 사랑하는 섬에
늘 너의 자리가 있는 이 섬이 참 좋아.

내가 나중에 나이 많이 들어서
혼자가 아닌, 누군가를 데리고 올 때
그 사람도 같이 반겨줄래?

늘 그 자리에서 변함없이 사랑해 주는
그 누군가가 당신이었으면 좋겠어요.

당신의 존재는
늘 그 자리에서 나를 기다리는 키 작은 나무처럼
언제나 기댈 수 있는 유일한 그리움이니까요.




내가 오기도 전에 존재한 너
MOLESKINE Diary│늘 그 자리에서 나를 기다리는 키 작은 나무